2011년 8월 11일 목요일

국내성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로 생각되는 국내성.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기 3년 (유리왕22년)에 졸본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네모뿔의 돌로 쌓은 석축성의 둘레는 약 2.7km. 吉林省(지린성) 輯安縣(지안현) 通溝城(통구성)에 위치.
이 성은 규모로 미루어 왕궁과 관청이 있는 거성 또는 도성으로 추측되며 유사시에는 북쪽 2.5km 지점에 있는 환도산성으로 피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벽의 일부


서벽의 일부


배수시설

압록강의 지류인 통구강 이 자연 해자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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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0일 수요일

고구려의 첫 왕성 오녀산성

桓仁만족자치현에 있는 五女山城은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장소로 생각되는 곳이다. 800m 험한 산마루에 자연 조건을 이용하여 만든 성으로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하기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생각된다.

멀리 보이는 바위산이 오녀산성이다.


산성입구에 최근에 세워진 고구려 시조비

산성으로 들어가려면 이런 999계단을 올라야한다.


성안에 들어가서 내려다 보이는 혼강과 환인분지.


천지 - 바위를 파서 만든  12 x 5m 에 깊이 2m 의 못으로 성안에 있는 유일한 연중 마르지 않는  물이다. 


해발 804m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지휘대


산성 입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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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발해지역 답사

211년 7월 31일 - 8월 7일 경주학 연구원에서 주관하는 답사에 다녀왔다.

총 34명이 아침 7시 경주 박물관 주차장 출발,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으로 중국 심양에 도착, 버스에 올라 현지 가이드 전원철씨의 안내로 답사가 시작되었다.
첫날 단동으로 직행하여 1박하고 다음 날부터 환인, 집안, 통화, 장백현, 이도백화, 백두산, 화룡, 용정, 돈화, 영안 발해진, 돈화, 길림, 장춘, 심양을 도는 약4000km (1만리)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날씨는 더운 날도 있었고 비가 오는 날도 이틀 있었다.
일반 관광 으로는 쉽게 가기 힘든 곳을 다니느라 운전 거리가 많았고 길찾기가 쉽지 않은 곳도 있었으며 한국인 출입 제한 지역을 최대한 접근하기위한 신경전도 있었다.
백두산 천지를 볼수 없었으나 귀한 고구려 발해 유적을 많이 볼수 있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상하이 이모 저모

상하이 여행의 시작은 상하이 교외의 쟈오통 대학 (交通大學 JTU) guest house에서 시작되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교통대학의 캠퍼스는 하나의 도시라 할만큼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문의 위용

캠퍼스의 일부 모습

이틀간의 회의를 끝내고 11월 14일 오후에 들어간 곳은 上海光大會展中心國際大酒店(Shanghai Everbright Convetion & Exhibition Center International Hotel)

첫날 저녁은 호텔 왕바오허져우자 (王寶和酒家) 에서 지금 제철인 상하이의 대표적인 게 다자셰(大閘蟹 대갑해 Hairy Crab)를 먹었다. 상하이 근처 호수에 자라는 이 게는 가을철이 가장 맛있는 때라고 한다. 우리는 한마리에 48위안 ($8) 하는 게와 게살이 들어있는 10코스 요리를 시켰다.




다음엔 황푸강 양안의 야경을 보면서 와이탄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걸을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있는 상하이 제일의 관광명소이다.

낮에 본 와이탄 풍경
상하이 박물관
상하이라오청황마오上海老城隍廟 City God Temple
위위안 (豫園)
쥬취챠오(九曲橋)와 난샹만터우덴(南翔饅頭店)
상하이라오졔(上海老街)
징안쓰(靜安寺)의11 ton 크기의 白玉佛 과 15 ton 크기의 銀佛

2010년 8월 2일 월요일


Vietnam의 하롱베이는 UNESCO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섬의 숲 속에 세워진 광고판 같은 것은 바로 UNESCO 세계자연유산이란 표시이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나와 같이 관광을 갔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표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에도 가끔 자연보호라는 커다란 간판이 자연경관을 해치며 서있는 것을 볼수있다. 그 뒤에 무선전화 기지국 안테나가 있다고 들었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모르겠다.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불국사 저녁 예불

2010년 6월 15일 저녁 7시경 경실과 Peter와 같이 경주 불국사에서 스님들이 법고를 치는 모습을 보며 그 소리를 들었다. 法鼓는 사찰의 사물(四物: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의 하나로 모든 짐승들을 위해서 치는 것이고, 木魚는 물에 사는 모든 생명을 위해, 雲板은 날아다니는 모는 생명을 위해, 그리고 梵鐘은 모든 인간을 위해 아침과 저녁으로 울리는 기물이다.

사찰의 저녁 예불이 시작될때 텅빈 조용한 사찰 경내에서 스님들이 법고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소리를 들으면 깊은 감명을 받게된다.

2010년 4월 1일 목요일

신라인의 국제교류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거의 찾아볼수 없는 유리그릇이 신라의 적석목곽분(돌무지 덧널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유리 제작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무덤에서 발견된 이 유리제품들은 그 형태나 제작수법이 남러시아, 지중해, 근동지방에서 출토되는 Roman Glass와 유사하기 때문에 비단길을 통해 들어온 교역품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6세기 중반 이전에 신라 사람들은 서역인들과 교역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수있고, 무덤에 껴 묻은 것으로 보아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 가도 알수 있다.

대외교역의 증거가 되는 유리 제품과 다른 유물들:


특히 황남대총 (5세기)에서 발굴한 봉수병은 부러진 손잡이를 금실로 감아 수리한 점에서 당시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수있다.


높이 24.7 cm, 국보 193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잔 천마총(6세기) 높이 7.4cm 보물 620호 국립경주박물관



상감유리목걸이: 경주 미추왕릉지구 출토, 5~6세기, 24.0cm 보물 634호


왼편 목걸이의 지름1.8cm 정도의 파란색 유리구슬에는 사람의 얼굴과 새, 구름 나무등이 상감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 쪽은 그 확대 사진으로 하얀 피부와 파란눈, 붉은 입술을 가진 이국적인 여인의 모습을 볼수있다.




교역품 중에 가장 뛰어난 물품은 아마도 아래의 장식보검이 아닐까?

1973년 미추왕릉 지구의 규모가 작은 적석목곽분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되어 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이었으나 금년에 정밀검사를 통해 새로이 많은 사실이 밝혀진 유물이다. (현재 경주박물관에서 특별전시중 2010년4월25일까지)


황금과 석류석(Garnet)으로 장식된 장식보검: 길이 36cm 보물 635호


위의 유물들을 볼때 신라인이 6세기 중엽이전에 이미 중국뿐 아니라 서역까지도 갔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서역인이 신라로 왔었을 것도 추정할수 있다. 경주 용강동의 8세기 무덤에서 나온 토용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홀(笏)은 그가 신라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관상 8세기 17.0cm
경주 괘릉 (원성왕릉 8세기말)의 무인석 역시 외래인의 정착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