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일 목요일

신라인의 국제교류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거의 찾아볼수 없는 유리그릇이 신라의 적석목곽분(돌무지 덧널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유리 제작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무덤에서 발견된 이 유리제품들은 그 형태나 제작수법이 남러시아, 지중해, 근동지방에서 출토되는 Roman Glass와 유사하기 때문에 비단길을 통해 들어온 교역품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6세기 중반 이전에 신라 사람들은 서역인들과 교역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수있고, 무덤에 껴 묻은 것으로 보아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 가도 알수 있다.

대외교역의 증거가 되는 유리 제품과 다른 유물들:


특히 황남대총 (5세기)에서 발굴한 봉수병은 부러진 손잡이를 금실로 감아 수리한 점에서 당시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수있다.


높이 24.7 cm, 국보 193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잔 천마총(6세기) 높이 7.4cm 보물 620호 국립경주박물관



상감유리목걸이: 경주 미추왕릉지구 출토, 5~6세기, 24.0cm 보물 634호


왼편 목걸이의 지름1.8cm 정도의 파란색 유리구슬에는 사람의 얼굴과 새, 구름 나무등이 상감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 쪽은 그 확대 사진으로 하얀 피부와 파란눈, 붉은 입술을 가진 이국적인 여인의 모습을 볼수있다.




교역품 중에 가장 뛰어난 물품은 아마도 아래의 장식보검이 아닐까?

1973년 미추왕릉 지구의 규모가 작은 적석목곽분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되어 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이었으나 금년에 정밀검사를 통해 새로이 많은 사실이 밝혀진 유물이다. (현재 경주박물관에서 특별전시중 2010년4월25일까지)


황금과 석류석(Garnet)으로 장식된 장식보검: 길이 36cm 보물 635호


위의 유물들을 볼때 신라인이 6세기 중엽이전에 이미 중국뿐 아니라 서역까지도 갔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서역인이 신라로 왔었을 것도 추정할수 있다. 경주 용강동의 8세기 무덤에서 나온 토용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홀(笏)은 그가 신라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관상 8세기 17.0cm
경주 괘릉 (원성왕릉 8세기말)의 무인석 역시 외래인의 정착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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