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1일 목요일

흥륭사 발해석등

8월6일 발해의 웅장한 수도였던 상경에 남아있는 興隆寺와 석등을 찾았다.
성의 남쪽에 있는 이 절은 석불사로 불리던 절터에 청대에 흥륭사를 지었고 지금은 1861년에 중건된 건물 중 남아있는 다섯채이다. 상경성 발굴에서 나온 유물들이 경내에 전시 (방치?) 되어있다.


흥륭사 전경


국내의 어느 석등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6m 높이의 석등
8각형의 대석위에 복련, 기둥, 앙련이 있고 그 위에 8개의 창문에 16개의 구멍이 뚫린 8각 정자형의 등실이 있다. 7층으로 된 상륜부도 잘 남아있다.



석등 위에 앉은 새 ...근직새라 칭하였다.







석불사라 불리던 이유였던 발해 시대의 석불.
3개의 돌에 몸체와 두 무릎을 따로 새겨 조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돌사자 1



돌사자 2





돌거북





關聖殿의 關雲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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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영광탑

중국 지린성 吉林省 장바이長白朝鮮族自治縣 서북쪽의 탑산 위에 있는 전탑.
10세기에 건립된 발해시대의 누각식 전탑이다.
1908년 장펑타이張鳳台라는 청나라 관리가 이 탑에 대하여 공자의 사당의 영광전 처럼 오랜 세월 속에서도 의연히 남아있다고 평한 뒤로 영광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초에 발해시대의 탑으로 확인되었으며 현재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4각 5층탑. 높이 13m, 기단의 한변의 길이는 3.3m.
중국 동북지역에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탑이고 동북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누각식 탑이다.
당나라의 건축 기법과 유사한면을보여주고 있고 또 우리나라 안동 지역의 전탑들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984년 발굴 (탑 밑에 지궁이란 무덤칸을 확인했으나 이미 도굴된 상태) 후 복원하였으나 현재 동남쪽으로 15도 가량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서북쪽에서 본 모습



기울어진 모습



탑 앞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 장백현이고 더 멀리 압록강 건너가 북한의 혜산이다.

 

중국 장백현과 멀리 북한의 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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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묘, 천추묘, 미창구 장군묘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는 고구려 새대의 고분이 만기가 넘는다.
그중 통구 고분군의 서대묘는 고구려 미천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밑에서 본 서대묘 (미천왕릉?)

중앙이 완전히 파헤쳐져 있다.
이는 일반 도굴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대대적인 파손이라고 본다.  고구려 고국원왕때 전연의 모용황이 침입하여 미천왕의 시신을 파헤쳐 간 사실이 이 무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파헤쳐진 무덤의 남은 주변에서 중앙을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



천추묘







미창구 장군묘.
환인 미창구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덤으로  무덤방에 벽화가 있었으나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몽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초기의 돌무지 무덤이 아니고 돌방흙무덤이어서 중기 이후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옥수수 밭을 지나니 무덤이 보인다.



무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다른 방향을 보면 강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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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 (장수왕릉)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의 용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무지 무덤이다.
이 무덤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鳥居龍藏)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 프랑스 학자인 샤반(Chavannes, E.), 일본인 세키노(關野貞) 등이 조사해 <<토바오 通報>>, <<남만주 조사 보고>>, <<고고한잡지>> 등에 발표한 후부터이다.
규모가 태왕릉, 천추총 다음으로 큰데다가 형체가 가장 잘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현재 장수왕릉으로 정해져 있으나 광개토대왕의 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밑변의 길이가 31.5m, 높이 12.4m 의 기단계단식 석실적석총.
화강암의 장대석을 규격에 맞게 잘라서 정연하게 7층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 형이다. 돌의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듯 하다. 총 1100여개의 장대석을 1층에 4단, 2-7층에는 3단씩 쌓아올렸고 정상부는 석회와 자갈을 섞어서 돔형으로 둥글게 마무리하였다.


1층의 각면에 적석이 밖으로 밀려나가지 않도록 높이 5m 가량의 거대한 호분석(護墳石)을 3새씩 기대어 세웠는데 북쪽면에 한개가 없어져서 무두 11개가 남아있다.

한개의 호분석이 없어진 북쪽면에 적석이 밀려난 모습.
위로 올라갈수 있도록 했던 계단은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통제하고 있다.

 

배총은 왕의 부인들의 무덤이거나 호위무사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무덤이다.
 주무덤의 북쪽 밖 돌담 흔적의 면에 접해 동서 횡렬로 남아 있는 배총군 중 동쪽의 제1배총. 한변이 10m 이며 도굴로 훼손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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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와 광개토대왕릉

서기 414년 장수왕 3년에 아버지인 고구려 제 19대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사면석비로 높이 6.39m, 너비 1.35~2.0m 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개석이 없는 고구려 특유의 형태.
비신의 4면에 총 1775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대석은 약 20cm 두께의 화강암을 사각으로 다듬은 것이고 비신은 方柱形의 각력응회암 角礫凝灰岩에 약간의 인공을 가한 것이다.
대석과 비신의 일부는 땅속에 묻혀 있고 대석의 일부는 깨져있다.

UNESCO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어서 주변을 잘 가꾸어 놓았다.


광개토재왕비의 비각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찍을 수 없다.


광개토대왕릉으로 정해져 있는 기단식 적석총 基壇式積石塚
기단의 한변이 63m, 무덤의 높이 6m


1990년 발굴되어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결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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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산성과 산성아래 고분군

丸都山城 - 국내성과 함께 고구려 도성으로 험준한 산세에 의지한 산성. 안에는 약 2400평에 이르는 대규모 왕궁 관련 유적이 확인됐다는 보고가 있었다.현재 궁궐터를 잘 보존하고 있다.

석성의 일부와 자연지세를 이용한 산성

남문

환도산성의 지휘대인 점장대

건물지


山城下 古墳群 -  산성 아래에는 다수의 고분이 있고 주위에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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