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의 용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무지 무덤이다.
이 무덤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鳥居龍藏)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 프랑스 학자인 샤반(Chavannes, E.), 일본인 세키노(關野貞) 등이 조사해 <<토바오 通報>>, <<남만주 조사 보고>>, <<고고한잡지>> 등에 발표한 후부터이다.
규모가 태왕릉, 천추총 다음으로 큰데다가 형체가 가장 잘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현재 장수왕릉으로 정해져 있으나 광개토대왕의 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밑변의 길이가 31.5m, 높이 12.4m 의 기단계단식 석실적석총.
화강암의 장대석을 규격에 맞게 잘라서 정연하게 7층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 형이다. 돌의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듯 하다. 총 1100여개의 장대석을 1층에 4단, 2-7층에는 3단씩 쌓아올렸고 정상부는 석회와 자갈을 섞어서 돔형으로 둥글게 마무리하였다.
이 무덤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鳥居龍藏)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 프랑스 학자인 샤반(Chavannes, E.), 일본인 세키노(關野貞) 등이 조사해 <<토바오 通報>>, <<남만주 조사 보고>>, <<고고한잡지>> 등에 발표한 후부터이다.
규모가 태왕릉, 천추총 다음으로 큰데다가 형체가 가장 잘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현재 장수왕릉으로 정해져 있으나 광개토대왕의 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밑변의 길이가 31.5m, 높이 12.4m 의 기단계단식 석실적석총.
화강암의 장대석을 규격에 맞게 잘라서 정연하게 7층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 형이다. 돌의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듯 하다. 총 1100여개의 장대석을 1층에 4단, 2-7층에는 3단씩 쌓아올렸고 정상부는 석회와 자갈을 섞어서 돔형으로 둥글게 마무리하였다.
배총은 왕의 부인들의 무덤이거나 호위무사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무덤이다.
주무덤의 북쪽 밖 돌담 흔적의 면에 접해 동서 횡렬로 남아 있는 배총군 중 동쪽의 제1배총. 한변이 10m 이며 도굴로 훼손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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